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주민들이 경비용역 업체를 바꾸기로 결정했다. 용역업체 소속인 경비원 78명 전원이 사실상 해고당하게 된 것이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 고급 아파트인 이곳은 지난 10월 50대 경비원이 분신 사망한 이후 경비원들의 열악한 처우를 상징하는 곳처럼 됐다. 지난달에는 경비원 전원이 해고 예고 통보를 받아 논란이 커졌다. 경비원들의 임금을 최저임금의 100%로 보장하는 법 시행을 앞두고 부유층인 주민들이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까지 집중됐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경비원 처우가 상대적으로 후한 곳으로 꼽혀 왔다. 경비원들도 "다른 아파트 경비원들이 부러워했다"고 말한다. 경비원 대부분이 정년까지 근무했고, 최장 30년을 근무한 이도 있었다. 한 경비원은 "월급도 185만원 수준으로 다른 곳보다 수십만원 많고 휴가나 퇴직금도 있다"며 "월급 말고도 주차 관리나 명절 명목으로 챙겨주는 돈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다른 아파트에선 하루 6시간인 무급 휴식 시간도 2시간에 불과하다. 주민과 경비원들이 그처럼 상생하던 이 아파트는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한 경비원이 해고통지서를 쥔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한 경비원이 해고통지서를 쥔 채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이진한 기자
주민과 경비원 사이가 금 가기 시작한 건 지난 10월 경비원 이모(53)씨가 분신, 한 달 만에 숨지면서부터다. 동료 경비원들은 당시 "이씨가 일부 입주민에게 지속적으로 비인격적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이 아파트에서 일해온 이씨는, 주민 민원으로 현재 동(棟)으로 근무지를 옮긴 뒤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료 경비원은 "분신 이유가 하나였겠느냐만 일부 입주민의 지나친 행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사람 사는 곳인데 경비원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느냐"며 "그런 분들보다 위로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더 많으니 견뎠던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일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은 민주노총이 개입하면서부터"라고 말했다. 이씨가 숨지자 민주노총은 아파트 단지 안에 분향소를 만들었다. 상복과 빨간 조끼를 입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이씨의 영정을 들고 "입주자대표회의는 진심 어린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씨의 장례식 때는 "(경비원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아파트 가격이 내려갈까 염려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물신주의와 자본의 천박함이 엿보인다"고 주장했다. 영결식을 마친 조합원들은 '근조 경비노동자 이OO 열사 민주노동자장'이란 만장을 앞세우고 관리사무소 앞으로 몰려가 가수를 불러 추모가를 부르며 노제를 열었다.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고 느낀 주민들의 감정은 악화됐다. 한 경비원은 "숨진 이씨 유족에게 주려고 3000만원의 성금을 모았던 주민 중 일부는 '이럴 수는 없다. 낸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흥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 이 아파트 경비원 노조는 지난달 27~28일 투표를 벌여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결국 주민들은 지난 3일 3시간에 걸친 입주자대표회의 끝에 참석 동대표 16명의 만장일치로 "현재 업체와 재계약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참석자들은 "고용 승계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고 전자 경비 시스템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혀, 상당수 경비원이 해고될 것을 시사했다.
입주자대표회의 김모(73) 회장은 "한 업체가 바뀌지 않고 계속 있다 보니 아파트 관리가 잘 안 된다는 주민 공감대가 있었고 분신 사건도 결국 직원 관리가 안 된 측면이 있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무엇보다 분신 사건 이후 입주민 전체가 경비원 인격을 모독하고 돈만 아는 수전노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가 매도되자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느낀 주민이 많다"며 "일부 기자가 민주노총의 주장을 확인도 안 하고 그대로 다 받아썼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은 지난 2012년 4월 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그해 정년 연장을 요구하며 굴뚝 농성을 하기도 했지만 올해처럼 갈등이 크지는 않았다. 일부에선 이번 분신 사건으로 민주노총과 맞서는 모양새가 된 것이 부담스러워 주민들이 업체 교체를 선택했다고 풀이한다.
용역업체 교체 소식을 들은 일부 경비원은 눈물을 글썽였다. 한 경비원은 "이 지경까지 왔으니 내가 동대표여도 업체를 바꾸겠다"면서 "주민들에게 솔직히 미안했다"고 말했다. 다른 경비원은 "사건 이후에도 업무에 최선을 다했는데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또 다른 경비원은 "민주노총 말만 믿었다가 주민과 우리가 모두 피해 보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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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 焚身(분신)' 아파트는 왜, 경비업체를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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